태종의 일상
태종의 일상
일반적으로 국가의 기틀을 다진 황제나 왕에게 붙이는 묘호. 국가를 창건했기 때문에 붙는 태조란 묘호와 다른 점은 국가의 창건자는 아니라는 점이다. 하지만 사실상 국가의 창건자에 준하는 공적을 세워야 받을 수 있는 묘호다. 태종 묘호를 받은 군주로는 김춘추(신라 태종), 이방원(조선 태종), 유항(전한 태종), 이세민(당 태종), 조광의(북송 태종), 완안오걸매(금 태종), 오고타이(원 태종), 주체(명 태종→성조), 홍타이지(청 태종) 등으로 한결같이 해당 왕조의 기틀을 쌓는 과정에서 업적과 무게감이 대단한, 묘호조차 필요 없이 본명만으로도 전근대, 현대의 역사서에 이름을 남길만한 명군들이다.
극심한 혼란
대부분 건국 초기의 극심한 혼란을 수습하고 나라를 안정궤도에 올려놓아 이후 수백년간 왕조가 지속될 수 있는 기반을 굳건히 한 군주에게 태종이라는 묘호가 붙는다. 으레 태조가 되는 첫 임금 때에 나라가 완전히 안정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태조가 즉위하는 건 보통 커리어를 쌓고 지지기반이 확실해진 중장년층 이후이기에 시간적 여유도 부족하고, 건국공신과 얽히고 설킨 태조의 입장도 한계가 있다. 결국 대체로 2~3번째쯤에 즉위하는 태종이 만만치 않은 반대세력을 굴복, 제거하는 과정에서 숙청 등 상당한 진통을 겪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 과정을 제대로 못 해결하면 오대십국시대나 오호십육국시대 혼란기의 수많은 나라처럼 태조 - x - 말제로 초라하게 끝나는 것이다. 때문에 태종이란 묘호를 가진 군주는 대체로 강한 의지를 지닌 파워풀한 군주라는 인상이 강하다. 또 태종이란 묘호를 받은 군주들은 명군이라 평가받는 군주들이 많은 편이다.
창건자인 태조의 아들
보통 창건자인 태조의 아들 또는 동생인 군주에게 태종이라는 묘호가 붙는 경우[2]가 많은데, 그 이유는 왕조의 창건시 태조와 함께 국가 창건에 큰 공을 세운 경우가 많은데다가 왕조의 창건자가 세상을 떠난 후에 흔히 야기되는 혼란을 수습하고 왕조가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교통정리 및 왕조의 체제를 제대로 형성해야 하는 막대한 책무가 이 2세대 임금에게 부여되기 때문이다. 개인사로 보면 전대 왕조가 끝물에 다다른 혼란기부터 역사에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해 가끔씩은 자기 스스로도 건국에 공을 세우고[3] 건국 이후에는 대업을 물려받아 비로소 완성시켜 태평성대를 일으키고 죽으며 후대에 융성한 장수 왕조로 만드는, 고진감래라는 역사적인 흐름을 겪고 스스로 세우는 인물들이기에 매우 파란만장하면서도 영웅적인 서사에 어울리는 시대상, 인물상이다. 창건자가 어렵게 나라를 세웠더라도 그 아들 세대에서 왕조를 유지하지 못하고 멸망한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중국사만 봐도 100년 이상 장수한 통일 국가들 6개[4]는 모두 2대나 사실상 2대 자리에 태종이라는 묘호를 받은 군주가 있었으며 단명한 통일 국가들 4개[5]는 모두 태종이라는 묘호를 받은 군주가 없다. 실제 태종의 묘호를 받은 군주 중에는 왕조 건립에 지대한 공을 세웠거나 왕조 초기의 불안정한 상황에서 쿠데타를 일으켜 스스로 왕위에 오르고 강력한 왕권을 구축하여 나라를 안정기에 올려 놓은 경우도 적지 않다. 실제로 중국사 통일 황조 중 후한[6]을 제외한 6국의 태종들은 6명[7] 전부 레전드급 황제들이다. 한국사에서 태종의 묘호를 받았다고 확실이 밝혀진 2명[8] 역시 레전드급 군주이다.
제2대 임금 태종
그래서 반드시 제2대 임금이라고 태종이라는 묘호를 받는 것은 아니며, 다른 묘호를 받는 경우도 많다. 물론 그 와중에 가까운 형제나 친척을 살해하는 등 도덕 윤리 면에서 점수를 깎아먹는 경우도 적지 않다. 대표적인 예가 이세민, 조광의, 주체, 이방원[9] 등이다. 원 태종과 청 태종의 경우 쿠데타를 일으키지는 않았지만 역시 적장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형들의 약점을 잘 파고들어 실력과 정치력으로 대권을 차지[10]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다만 정복왕조였던 원과 청의 경우 적장자 계승 원칙이 분명하지 않았던 유목민족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유능한 자가 큰 유혈사태 없이 황제가 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위에도 나오지만 적장자 계승 원칙이 분명한 유교 국가의 태종들은 대부분 유혈사태 내지는 뒷말이 무성한 구리구리한 과정을 겪고 보위에 올랐다.
또한 앞서 설명한 이유로 인해 제3대 임금이나 그 다음대의 임금도 태종이라는 묘호를 받을 수 있다. 당장 통일신라의 태종 무열왕도 그런 사례며, 조선 태종도 해당된다. 다만, 태종 무열왕의 경우는 묘호 자체가 원래 중국의 제도고 신라 초기에는 서해안에 항구가 없어 중국과 본격적으로 교류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김춘추 시대에 들어서 중국에서 묘호 제도를 새로 도입한 것에 가깝고[11] 이방원의 경우에는 사실 전임 군주인 정종이 숙종 때까지도 묘호를 받지 못한 군주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사실상 조선의 2대 국왕 자격으로 태종이라는 묘호를 받은 셈이다.
일반적으로 국가의 기틀을 다진 황제나 왕에게 붙이는 묘호. 국가를 창건했기 때문에 붙는 태조란 묘호와 다른 점은 국가의 창건자는 아니라는 점이다. 하지만 사실상 국가의 창건자에 준하는 공적을 세워야 받을 수 있는 묘호다. 태종 묘호를 받은 군주로는 김춘추(신라 태종), 이방원(조선 태종), 유항(전한 태종), 이세민(당 태종), 조광의(북송 태종), 완안오걸매(금 태종), 오고타이(원 태종), 주체(명 태종→성조), 홍타이지(청 태종) 등으로 한결같이 해당 왕조의 기틀을 쌓는 과정에서 업적과 무게감이 대단한, 묘호조차 필요 없이 본명만으로도 전근대, 현대의 역사서에 이름을 남길만한 명군들이다.
건국 초기의 극심한 혼란
대부분 건국 초기의 극심한 혼란을 수습하고 나라를 안정궤도에 올려놓아 이후 수백년간 왕조가 지속될 수 있는 기반을 굳건히 한 군주에게 태종이라는 묘호가 붙는다. 으레 태조가 되는 첫 임금 때에 나라가 완전히 안정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태조가 즉위하는 건 보통 커리어를 쌓고 지지기반이 확실해진 중장년층 이후이기에 시간적 여유도 부족하고, 건국공신과 얽히고 설킨 태조의 입장도 한계가 있다. 결국 대체로 2~3번째쯤에 즉위하는 태종이 만만치 않은 반대세력을 굴복, 제거하는 과정에서 숙청 등 상당한 진통을 겪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 과정을 제대로 못 해결하면 오대십국시대나 오호십육국시대 혼란기의 수많은 나라처럼 태조 - x - 말제로 초라하게 끝나는 것이다. 때문에 태종이란 묘호를 가진 군주는 대체로 강한 의지를 지닌 파워풀한 군주라는 인상이 강하다. 또 태종이란 묘호를 받은 군주들은 명군이라 평가받는 군주들이 많은 편이다.
보통 창건자인 태조의 아들 또는 동생인 군주에게 태종이라는 묘호가 붙는 경우[2]가 많은데, 그 이유는 왕조의 창건시 태조와 함께 국가 창건에 큰 공을 세운 경우가 많은데다가 왕조의 창건자가 세상을 떠난 후에 흔히 야기되는 혼란을 수습하고 왕조가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교통정리 및 왕조의 체제를 제대로 형성해야 하는 막대한 책무가 이 2세대 임금에게 부여되기 때문이다. 개인사로 보면 전대 왕조가 끝물에 다다른 혼란기부터 역사에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해 가끔씩은 자기 스스로도 건국에 공을 세우고[3] 건국 이후에는 대업을 물려받아 비로소 완성시켜 태평성대를 일으키고 죽으며 후대에 융성한 장수 왕조로 만드는, 고진감래라는 역사적인 흐름을 겪고 스스로 세우는 인물들이기에 매우 파란만장하면서도 영웅적인 서사에 어울리는 시대상, 인물상이다. 창건자가 어렵게 나라를 세웠더라도 그 아들 세대에서 왕조를 유지하지 못하고 멸망한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중국사만 봐도 100년 이상 장수한 통일 국가들 6개[4]는 모두 2대나 사실상 2대 자리에 태종이라는 묘호를 받은 군주가 있었으며 단명한 통일 국가들 4개[5]는 모두 태종이라는 묘호를 받은 군주가 없다. 실제 태종의 묘호를 받은 군주 중에는 왕조 건립에 지대한 공을 세웠거나 왕조 초기의 불안정한 상황에서 쿠데타를 일으켜 스스로 왕위에 오르고 강력한 왕권을 구축하여 나라를 안정기에 올려 놓은 경우도 적지 않다. 실제로 중국사 통일 황조 중 후한[6]을 제외한 6국의 태종들은 6명[7] 전부 레전드급 황제들이다. 한국사에서 태종의 묘호를 받았다고 확실이 밝혀진 2명[8] 역시 레전드급 군주이다.
그래서 반드시 제2대 임금이라고 태종이라는 묘호를 받는 것은 아니며, 다른 묘호를 받는 경우도 많다. 물론 그 와중에 가까운 형제나 친척을 살해하는 등 도덕 윤리 면에서 점수를 깎아먹는 경우도 적지 않다. 대표적인 예가 이세민, 조광의, 주체, 이방원[9] 등이다. 원 태종과 청 태종의 경우 쿠데타를 일으키지는 않았지만 역시 적장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형들의 약점을 잘 파고들어 실력과 정치력으로 대권을 차지[10]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다만 정복왕조였던 원과 청의 경우 적장자 계승 원칙이 분명하지 않았던 유목민족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유능한 자가 큰 유혈사태 없이 황제가 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위에도 나오지만 적장자 계승 원칙이 분명한 유교 국가의 태종들은 대부분 유혈사태 내지는 뒷말이 무성한 구리구리한 과정을 겪고 보위에 올랐다.
또한 앞서 설명한 이유로 인해 제3대 임금이나 그 다음대의 임금도 태종이라는 묘호를 받을 수 있다. 당장 통일신라의 태종 무열왕도 그런 사례며, 조선 태종도 해당된다. 다만, 태종 무열왕의 경우는 묘호 자체가 원래 중국의 제도고 신라 초기에는 서해안에 항구가 없어 중국과 본격적으로 교류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김춘추 시대에 들어서 중국에서 묘호 제도를 새로 도입한 것에 가깝고[11] 이방원의 경우에는 사실 전임 군주인 정종이 숙종 때까지도 묘호를 받지 못한 군주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사실상 조선의 2대 국왕 자격으로 태종이라는 묘호를 받은 셈이다.